지난해 8월 한국을 찾아 이재명 대통령과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잇달아 만났던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정확히 1년 만인 오는 14일 다시 한국을 찾습니다. 이번에는 한성숙 국무총리와의 면담까지 확정됐습니다. 이전에 이 블로그에서 “추진 중”이라 소개했던 이 방한 일정이 이제 구체적인 날짜와 함께 확정된 겁니다. 오늘 주식이야기에서는 이번 방한에서 논의될 소형모듈원자로(SMR) 공급망 이슈를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1. 확정된 일정 — 게이츠 측이 먼저 청한 만남
업계에 따르면 게이츠 이사장은 오는 14일 방한해 한성숙 국무총리와 회동합니다. 이 면담은 게이츠 이사장 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원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진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총리 면담으로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총리 예방 이후에는 SK, HD현대 등 테라파워와 협력 중인 국내 기업 관계자들과도 잇달아 회동할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2008년 차세대 원전기업 테라파워를 창업한 게이츠 이사장은 지금도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테라파워가 개발 중인 4세대 원자로 ‘나트륨(Natrium)’은 물 대신 액체 나트륨으로 열을 식히는 소듐냉각고속로(SFR)로, 345메가와트(MW)급 원자로에 용융염 축열 설비를 결합해 필요할 때 출력을 500MW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출력이 들쭉날쭉한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설계로 평가받습니다.
2. 왜 하필 지금 다시 주목받나
이번 방한은 정부가 SMR 육성에 속도를 내는 시점과 맞물립니다. 정부는 지난달 23일 ‘차세대 SMR 육성 추진 방향’을 발표하며 개발·실증·인허가·사업화를 연계하는 범정부 지원 체계를 가동하기로 했고, 오는 9월부터는 SMR 기업을 지원하는 특별법 관련 절차도 추진될 예정입니다.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의 폭증하는 전력 수요가 있습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4년 415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945TWh로 두 배 넘게 늘어날 전망이고, 국내에서도 2035년까지 18.4기가와트(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메가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전에 이 블로그에서 다뤘던 전력망 병목 이야기가 SMR이라는 구체적 해법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3. 흥미로운 지점 — 같은 원자로에 나란히 참여하는 두산과 HD현대
이번 방한을 계기로 특히 주목받는 대목은, 두산에너빌리티와 HD현대중공업이 테라파워가 미국에서 짓고 있는 실제 원자로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같은 원자로에 서로 다른 핵심 기자재를 나란히 공급하는 구조입니다. 전통적인 원전 주기기 제작사인 두산에너빌리티뿐 아니라, 조선업이 주력인 HD현대중공업까지 차세대 원전 공급망에 합류하면서 국내 중공업 기업들의 사업 영역이 SMR을 매개로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과 게이츠 이사장의 협력은 2022년 HD한국조선해양이 테라파워에 300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지난해 3월에는 미국에서 ‘나트륨 원자로의 상업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장 전략적 협약’을 체결하며 협력을 구체화했고, 같은 해 8월 게이츠 이사장의 방한 당시에도 정 회장과 별도로 만나 SMR 협력을 재확인한 바 있습니다.
4. 다음 의제는 ‘핵연료 공급망’?
이번 방한을 계기로 한국과 테라파워의 협력이 기자재 제작을 넘어 핵연료 공급망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테라파워 사업에서 투자, 기자재 제작, 건설, 운영 협력에 참여하고 있지만, 정작 원자로 가동에 필요한 고순도 저농축우라늄(HALEU) 공급망에서는 아직 뚜렷한 역할이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HALEU가 이번 총리 면담의 공식 의제로 확인된 건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총리실 면담 요청 자체가 단순한 기업 회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SMR 협력은 원전 기자재 수주만으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연료 조달과 인허가, 한·미 원자력협정, 공급망 안보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테라파워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우라늄 농축시설에 투자하고 장기 구매권을 확보하는 방식을 추진해온 사례가 하나의 참고 모델로 거론되며, 국내 기업들도 해외 HALEU 생산시설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미국·동맹국 생산시설의 물량을 장기로 확보하는 방안이 선택지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5. SK의 그림 — SMR과 LNG·ESS를 결합한 통합 에너지 모델
SK이노베이션은 SMR을 단순한 발전 사업을 넘어 통합 에너지 사업의 핵심 전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LNG 발전과 에너지저장장치(ESS)를 SMR과 결합해 AI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모델입니다. 그룹 내 데이터센터를 초기 수요처로 확보할 경우,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통해 초기 사업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6. 투자자가 유의할 점
이번 방한이 확정되며 관련주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커지고 있지만, 몇 가지는 냉정하게 짚어야 합니다. 우선 HALEU 공급망 논의는 아직 공식 의제로 확인되지 않은 관측 수준입니다. 또한 두산에너빌리티와 HD현대중공업이 테라파워 사업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하지만, 이는 이미 진행 중인 협력이지 이번 방한으로 새롭게 생기는 계약이 아니라는 점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이번 방한의 진짜 관전 포인트는 총수 회동 사진이나 단기 관련주 주가 흐름이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테라파워 사업에서 기자재 제작을 넘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연료 공급망까지 역할을 넓힐 수 있을지에 달려 있습니다. 앞서 여러 이슈에서 짚었듯, 방한이라는 이벤트와 실제 계약 확장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7. 마무리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 빌 게이츠의 이번 방한은, 지난해보다 한층 구체화된 의제와 확정된 일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결이 다릅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HD현대중공업이 같은 원자로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 중공업 산업의 사업 영역이 실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이기도 합니다. 다만 핵연료 공급망이라는 다음 단계로의 확장이 실제로 이뤄질지는, 이번 방한 이후 나올 후속 소식을 통해 확인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 글은 공개된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정보 제공 목적의 콘텐츠이며,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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